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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영화

[8월 영화]덕혜옹주 감상


나라를 빼앗겼으니 시키는 대로 기모노를 입고 자신의 집을 떠나야 했다. 

조선이 독립했으니 당연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천만에,

매국노는 돈 많이 벌어 놓아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이승만 정권은 덕혜옹주의 입국을 불허 한다.

63년생 허진호 감독이 덕혜옹주를 참 잘 만들어 줬다.

덕혜옹주보며 먹을 즐거운 간식거리 멘티랑 팝콘 셋트 한아름 준비 했지만,

나라를 잃은 설움을 절실하게 보여주는 영화 앞에서 차마 팝콘을 씹어 내릴 수가 없었다...팝콘은 그대로 들고 나왔다.


덕혜옹주 (1912년 5월 25일 ~ 1989년 4월 21일)

조선시대에 왕실에는 후궁 소생의 수많은 옹주들이 있었지만 정비 소생의 공주보다 서열이 낮은 신분의 한계 때문에 역사적으로 조명 받지 못했다 그나마 세간에 알려진 인물로는 영조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사도세자의 동생 화완옹주와 망국의 호아제 고종의 말년을 행복하게 해주었던 덕혜옹주를 들 수 있다.


고종에게는 일찍이 9남 4녀의 자식이 있었지만 대부분 어렸을 때 죽고 장성할 때까지 생존한 사람은 명성황후 민씨 소생의 순종 이척, 귀인 장씨의 소생의 의친왕 이강, 황귀비 업씨 소생의 영친왕 이은, 복녕당 양씨 소생의 덕혜옹주까지 3남 1녀뿐이었다. 그 때문에 덕혜옹주는 고종의 직극한 사랑을 받으며 애지중지 키워졌다.


덕혜옹주는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희망을 잃고 살아가던 한국인들에게 조선의 추억을 일깨워주는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발랄하던 어린 시절 아버지 고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부터 공포에 휩싸여 살았으며 신식 여성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끌려간 뒤에는 우울증에 고독감까지 겹쳐 실어증에 걸렸다.


몇 년 뒤 어머니 귀인 양씨의 죽음으로 덕혜옹주의 심리 상태는 벼랑 끝가지 몰려 정신분열증으로 비화 되었지만 냉혹한 일제는 정략결혼을 통해 그녀를 더욱 비좁은 새장 속에 가두어 버렸다. 그 때문에 병세가 심화된 그년는 딸과 생이별하고 사방이 가로막힌 정신병원에서 청춘을 흘려보내다 남편에게 버림받았다.


말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창덕궁 낙선재에 안주했지만 이미 영혼이 떠나버린 그녀의 육신은 아득한 유년의 기억만을 남긴 채 파랑새처럼 저 세상으로 훌쩍 날아가 버렸다.


자료출처 : 다음 영화 정보 및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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