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이재한 감독이 인물도 좋은데 인천상륙작전을 감동의 영화로 잘 만들었다.
"상관의 명령없이 철수할 수 없습니다..."
소년병의 말은 맥아더를 감동시켰다.
맥아더는 소년병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이야기가 있고 감동이 있는 인천상륙작전 온 식구가 봐도 좋겠다.
6.25 전쟁을 겪었거나 4.3을 겪은 어르신들과 함께 보려면 휴지를 넉넉히 준비해야 겠다.
여든일곱 우리 아버지 6.25전쟁으로 징집되어 4년을 군에서 보내신 분,
처음 맡은 보직은 파격포 사수(81mm),
전쟁터 총알은 귀 옆으로 지나가주어 살았단다.
그랗게 잘 지난가던 총알이 어느날 아버지를 기절 시켰다.
정신을 차리고 더듬 거리는데
철모에 뻥~ 구멍이 뚤렸다.
눈을 자꾸 덮는 철모가 답답해 양말 두개를 접어 머리 위에 올려 놓고 있었는데,
총알은 영화처럼 양말과 철모에 구멍을 남기고 갔다.
동부전선!
전투에서 따발총의 공격으로 전진이 안되자,
연대장이 "때려부셔" 소리쳤고,
파격포를 셋이서 메고 개울을 기어 올라 30여 발을 때려 부었다.
(우리동네, 목우낭에서 서네조숨 거리쯤)
명중!
이어진 외침...
휴가!
누군가에겐 전쟁 중에 휴가라는 큰 기쁨을 얻었다.
기관총이 쉼없이 나오던 그 곳으로 가보니
어린 소년 두명이 기관총에 손이 묶여 있었단다.....
" 인민군이 총알만 나가게 헌 거라...."
목소리에 축축함이 묻어나는 우리 아버지.. 기억을 추스리신다.
공비토벌 보온지방 전투!
아버지 이마 파편!
포격이 이어지고 동료가 아버지 이마에 피를 가르킨다 " 어! 피.."
피가 나는 곳은 오른쪽 이마인데 통증은 미간 사이에서 느꼈다.
지금도 아버지 이마에는 콩알만한 파편이 있다.
전쟁의 기억은
파편으로 두통으로 지금도
머리띠를 동여매고 계신다.
인천상륙작전
출연 : 이정재, 이범수, 리암니슨, 진세연,정준호 ....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이 북한의 남침 이후 인천지역에 대한 작전을 통해 북한군의 병참선과 배후를 공격하여 전쟁을 반전시킨 상륙작전.
1950면 6월 29일 서울이 함락되고 북한군의 진격이 가속화되자 한강 방어선을 시찰한 맥아더 원수는 북한군이 남진을 계속할 경우 장차 인천으로의 상륙작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 장군이 한강전선을 시찰하고 복귀한 직후인 1950년 7월 첫주에 그의 참모장 알몬드(Edward Almond) 소장에게 하달한 지시와 더불어 조기에 계획이 진척되었다. 이 계획은 작전참모부장 라이트 준장이 이끄는 합동전략기획단에 의해 연구되었으며, '블루하츠'라는 작전명이 부여되었다.
이에 따라 그는 미 지상군의 참전이 결정된 나흘 뒤에 이미 일본에 주둔한 미 제1기병사단으로 7월 하순에 인천상륙작전을 단행할 수 있도록 상륙흔련을 지시하였다.
7월4일에는 미 극동군사령부에서 상륙작전을 위한 최초의 공식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러나 블루하츠 계획은 북한군을 38선 너머로 격퇴시키려 기도하고 작전일자를 7월22일로 하였으나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할 유엔군의 병력 부족으로 7월 10일 경에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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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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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인천상륙작전은 손쉽게 교두보를 확보했다. 9월 16일 미 해병사단이 전진교두보를 확보하고 본격적인 진격작전의 토대를 마련할 때까지 총 손실은 매우 미미하였다.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