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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나체로 한 바퀴 돈다면 세금을 내리겠소” 거리의 주민들은 눈을 감았다

[중앙일보] 입력 2011.12.08 00:00 / 수정 2011.12.08 10:59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 화가 존 콜리어의 작품에 ‘레이디 고디바’라는 게 있다. 아름다운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백마를 타고 중세 거리를 지나고 있는 그림이다. 부끄러움에 고개 숙인 그녀의 나신은 너무 눈부셔 요염하기보다 성스럽다.

 그녀는 실존인물이다. 11세기 영국 코번트리 영주였던 레오프릭 3세의 부인 고디바다.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가혹한 세금을 내려달라는 그녀의 요청에 남편은 코웃음을 친다. “당신이 나체로 영지를 한 바퀴 돈다면 그렇게 하겠소.” 열일곱 살 고디바가 어려운 결심을 실행에 옮기던 날, 감동한 주민들은 부인의 나신을 절대로 훔쳐보지 말자고 결의한다. 모든 주민이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려 그녀의 희생에 보답했다.

 단 한 사람, 재봉사 톰이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약속을 어기고 커튼을 들췄다. 관음증 환자를 뜻하는 ‘엿보는 톰(peeping Tom)’이란 표현이 여기서 생겼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진 연예인 섹스 동영상이 우리 사회의 관음증을 다시 한번 노출시켰다. 그렇잖아도 ‘엿보기’와 ‘드러내기’로 소란스러운 세상이다. 남의 사생활 엿보는 몰래카메라는 말할 것도 없고, ‘무한도전’ ‘1박2일’ 같은 TV프로그램도 연예인 훔쳐보기와 다름없다. 요즘 인기를 끄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또한 결국 이 시대의 ‘톰’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 아니겠나.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과 SNS는 그런 사회적 관음에 날개를 달아준다. ‘개똥녀’ ‘막말녀’ 같은 마녀사냥이 거기서 나온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희망도 보았다. 톰들의 활갯짓 사이로 창문을 닫는 코번트리 주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영상 주인공 대신 유출자를 꾸짖었고, 퍼 나르기에 부산한 톰들의 행동을 부끄러워했다. 인터넷과 SNS의 자정(自淨)기능을 확인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 하나를 더 감상하자.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의 ‘아르테미스와 악타이온’이다. 티치아노는 사냥꾼 악타이온이 길을 잃고 헤매다 목욕 중이던 처녀신 아르테미스와 마주치는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정절이 훼손됐다고 여긴 아르테미스는 악타이온에게 저주를 내린다. 사슴으로 변한 악타이온은 자신의 사냥개들에게 쫓기다 무참하게 물려 죽고 만다.

 악타이온은 억울하달지 모르지만, 여인들이 왁자지껄한 곳에 아무것도 모르고 접근했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여기서 현대적 해석이 가능하겠다. 악타이온은 인간이기보다 인간성이다. 널리 퍼진 동영상 좀 찾아보는 게 뭔 잘못이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그러는 사이 우리의 인간성은 치명적 상처를 입고야 만다. 엿보는 톰이 끝내 실명한 것처럼.

이훈범 문화스포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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