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

겨울눈

겨울눈

길상호


그날은 나무와 눈이 맞았다
한동안 뿌리 근처를 서성이며
내가 불쌍한가, 나무가 더 불쌍한가 가늠했다
처음에 잎도 하나 없는 나무 쪽으로
연민의 무게가 기울었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아직 어머니가 남아 있고
바람 잘 날 없었지만
이제는 바람에도 이골이 났으므로
나무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무의 눈과 마주친 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나무는 솜털 덮인 눈, 따뜻한 눈으로
터무니없는 내 생각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우습다는 듯 우습다는 듯
첫눈은 가지마다 내려 쌓였고
그날 겨울눈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그만
나무 밑에서 얼어붙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