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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문화예술

제주유배길-집념의 길

 

‘한 점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다/ 그윽하고 담담하고 영롱하게 빼어났네/ 매화가 기품이 높다지만 뜨락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맑은 물에서 참으로 해탈한 신선을 보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제주도 유배 시절 수선화를 무척 아끼고 사랑해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그는 한양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주도의 수선화는 천하의 큰 구경거리”라며 “정월 그믐께 피기 시작한 수선화는 3월이 되면 산과 들에 마치 흰 구름이 깔린 듯 흰 눈이 장대하게 쌓인 듯하다”고 감탄했다.

 

추사유배길은 그 수선화가 탱자나무 담장 아래에서 은근한 자태로 그윽한 향을 날리는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의 추사유배지에서 시작된다. 대정읍성에 둘러싸인 추사유배지는 대정골 제일의 토호였던 강도순의 집. 추사가 처음 유배생활을 시작한 곳은 지금은 터만 남은 인근의 송계순 집이었으나 3년째 접어들던 해에 이곳으로 옮겼다. 안거리(안채), 밖거리(사랑채), 모거리(별채)로 이루어진 현재의 초가집은 고증을 거쳐 1984년에 복원됐다.

 

“70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는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를 온 때는 55세 되던 1840년. 34세에 대과에 급제해 출세가도를 달리던 추사는 형조참판 시절에 정변에 휘말려 한양에서 가장 먼 제주도 대정현으로 유배됐다.

 

추사는 8년 3개월 동안 탱자나무 울타리에 갇혀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유배생활 중 추사체를 완성하고, 국보 180호로 지정된 세한도를 그리는 등 자신의 예술세계를 완성하는 계기로 삼았다. 유배지 앞에 위치한 제주추사관은 추사의 작품과 탁본 등을 전시한 공간으로 세한도에 나오는 둥근 창문이 있는 사각형 집을 모델로 삼았다.

 

‘집념의 길’로 명명된 추사유배길 1코스는 제주추사관에서 송계순 집터와 정난주마리아묘를 거쳐 대정항교에 이르는 8.6㎞. 비록 탱자나무 담장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는 위리안치의 형벌을 받았지만 추사는 대정향교와 안덕계곡은 물론 한라산까지 다녀올 정도로 행동이 자유로웠다. 12개의 돌하르방이 지키고 있는 골목은 추사가 걸어 다녔던 옛길.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정난주마리아묘는 천주교 성지로 천주교도인 정난주의 무덤이다.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현의 딸 정난주는 1801년 남편 황사영의 백서사건에 연루돼 제주목의 관노로 유배된다. 그녀는 신앙에 의지해 37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다 추사가 유배되기 2년 전인 1838년에 눈을 감는다. 추사는 다산 정약용을 무척이나 존경했고 아들인 정학연, 정학유 형제와도 매우 가까운 사이였으니 인연치고는 묘한 인연인 셈이다.

 

‘인연의 길’로 불리는 2코스는 제주추사관에서 제주옹기박물관을 거쳐 서광다원에 이르는 8㎞ 코스로 차를 사랑한 추사의 삶이 다향처럼 은은하게 풍기는 길이다. 검은 돌담에 둘러싸인 마늘밭 사잇길을 걷다 보면 추사의 ‘시골집’ ‘우연히 짓다’ 등 6편의 시비에 둘러싸인 수월이못이 나온다.

대정읍 구억리의 노랑굴과 검은굴은 옹기를 굽던 돌가마터. 돌가마는 제주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가마로 대정읍은 예로부터 옹기로 유명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매화가 만개한 매화마을을 지나면 한동안 중산간의 비포장 산길이 제주의 허파로 불리는 곶자왈을 산책한다.

 

곶자왈은 제주의 용암지대에 만들어진 특이한 숲. 추사는 이 지역의 곶자왈을 걸으면서 “밀림의 그늘 속에 하늘빛이 실낱만큼 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나무들과 사랑스러운 단풍의 모습을 보았다”고도 했다. ‘인연의 길’은 추사가 그토록 좋아했던 차가 생산되는 서광다원에서 막을 내린다.

 

대정향교에서 안덕계곡까지 이어지는 10㎞ 길이의 ‘사색의 길’은 추사유배길 3코스. 추사가 유배지 인근을 돌아다니며 풍경을 감상하던 길이다. 추사가 그토록 사랑하던 수선화를 비롯해 노란 유채꽃과 붉은 동백꽃, 그리고 온갖 야생화들이 앞 다퉈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길이다.

 

대정향교가 위치한 단산은 산방산과 함께 제주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화산체. 단산은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을 달리한다. 사계 쪽에서 보면 박쥐가 날개를 펼친 모양이지만 인성리에서 보는 단산은 추사체로 쓴 ‘山’자를 닮았다. 추사는 유배지에서 대정향교를 오갈 때 대정들녘의 거친 비바람에 살점이 죄다 빠져버려 골격만 남은 단산의 특이한 모습을 보고 어떤 영감을 받았을까.

 

학자들은 제주도 유배 전의 추사 글씨가 획이 기름지고 두텁고 자신감이 넘치며 윤기가 흘렀다면 유배 시절에 완성된 추사체는 기름기가 다 빠지고 메말라 대단히 명상적이라고 말한다. 대정향교를 오가며 보았던 단산의 골격만 남은 모습을 보고 추사체를 완성했다는 말은 이래서 나왔다.

 

대정읍에서도 단산과 산방산이 한눈에 보이는 알뜨르비행장 주변의 들녘은 수선화가 지천이다. 그런데 제주 사람들은 수선화를 그다지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밭뙈기마다 무성하게 자라 왕성하게 번식하는 수선화는 잡초일 뿐이다. 추사는 편지에서 제주 사람들이 수선화가 귀한 줄 몰라 소와 말에게 먹이고 짓밟아 버린다며 안타까워했다.

 

대정향교를 출발한 ‘사색의 길’은 마늘밭과 유채밭을 가로질러 산방산 전망대에서 제주도의 깊고 푸른 바다를 감상한 뒤 안덕계곡을 향한다.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를 비롯해 상록수들이 사철 푸른 안덕계곡은 천연기념물 제377호. 식수가 좋지 않아 고생했던 추사는 물 좋은 창천(안덕계곡)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권진응을 부러워했다. 그래서 유배가 끝날 무렵에는 물이 좋은 창천리로 한 번 더 옮긴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추사가 제주도를 떠난 지 어언 164년. 추사체와 세한도가 완성된 대정들녘에는 수선화가 그윽한 향을 날리고 안덕계곡 푸른 물에는 낙화한 동백꽃이 둥둥 떠다니며 추사와 함께 지냈던 봄날을 그리워하고 있다.

-3월 14일 국민일보 인용-

 

추사유배길 1코스-집념의 길은 제주추사관-송죽사터-송계순집터-드레물-동계정온 유허비-한남의 숙터-정난주마리아묘-남문지못-단산과방사탑-세미물-대정향교 순으로 되어 있다.

소요시간: 약3시간

총거리: 8.6키로

출발: 추사관

도착: 추사관

제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추사관까지 가는 버스는 대체로 40분마다 있으나 시간마다 경유지가 다르므로 반드시 확인 후 이용해야 한다.

 

 

 

<남문지못 완당선생해천일립상>

-남문지못에는 추사의 유배시절 모습을 그린 입석이 세워져 있다.

추사의 제자 소치 허연이그린 ,완당선생해천ㅇ리립상>이다. 

 

 

 

 

<방사탑>

-거욱대라고도 불리는 방사탑은 마을의 한 쪽에 나쁜 기운이 있다거나 기가 허한 곳에 쌓아올린 돌탑을 말한다. 

 

<집념의 길 안내도>

-하루의 반나절을 이용하면 충분히 돌아 볼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 인내심이 부족한 사춘기 자녀와 함께 유배인들이 견뎌온 삶을 돌아보며 걸어 본다면 좋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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